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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당나귀 운전사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21:08, 조회 : 1,497, 추천 : 325

벼랑 끝에 선 당나귀 운전사

벼랑 끝에 선 당나귀 운전사


명색이 좋은 성지순례 길에 오른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예루살렘에서 당나귀를 타고 돌아보는 코스가 있었다. 돈을 몇 푼 주고 당나귀를 빌렸다. 당나귀를 운전하는 법은 단 두 가지였다. 즉 “알렐루야”  하면 가고 “아멘”하면 멈춘다는 것이다.

한참이나 신나게 구경을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뜻하지 않게 벼랑을 만나게 되었다. 더 이상 가다가는 그냥 벼랑 밑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당나귀를 멈추게 하는 말을 잊어버렸다. 당나귀는 철딱서니없이 벼랑 끝으로 자꾸만 가고 있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서라”고 외쳐도 점점 빨리 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아차 죽었구나 싶은 생각에 그 열심한 성지순례 객은 청원의 기도를 허겁지겁 공중을 향하여 쏘아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이번에 제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주여, 제발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 모든 기도를 주 예수의 이름 받들어 올리나이다…. 아멘!”

바로 이 순간 당나귀는 벼랑 끝에 우뚝 멈추어 섰다. 왜냐하면  “아멘”이란 명령어를 들었기 때문이다. 위기일발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 사람은 너무나도 신이 나서 “알렐루야”하고 손뼉을 쳤다. 바로 그 순간 당나귀는 “가자”는 신호로 “알렐루야”를 접수해 버렸다.

(주여,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들의 기도 생활의 한 단면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웃지 못할   희극인 것 같다. 많은 기도자들이 수없이 많은 기도들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도의 내용은 무척 이기적이다.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로 압축된다. 건강을 비는 기도, 사업의 발전을   위한 기도, 아들자식을 낳게 해달라는 기도 등등. 가만히 들어보면  모두다 요긴하고 중요한 기도들이다. 그런데 기도의 폭이 너무나   좁은 것이 탈이다. 전후 좌우를 생략하고 무조건 달라는 식의 기도가 주종을 이룬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대화가 어떻게 혼자만의 독백으로  끝날 수 있는가…? 대화란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순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과의 대화를 기도라고 할 때 과연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귀담아 들었는가…?


사무엘은 외쳤다.


“주여, 말씀하소서. 당신 종은 듣겠나이다”(Ⅰ사무 3, 10).

많은 기도자들이 하느님을 원망할 때가 있다. 하느님께서 너무나 무심하다고, 그토록 열심히 구일 기도를 바쳤는데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한다. 하느님의 말씀이나 응답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원망부터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앞에 있는지 아니면 나의 뜻이 하느님의 뜻보다 앞에 있는지 가끔 혼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입버릇처럼 하는 주의 기도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을 거꾸로 하고 있다. 나의 뜻만을   앞세우는, 나의 욕심과 나의 목적만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한다.

우산 장수가 우산이 잘 팔리도록 매일같이 비가 오기를 기도한다면 그래서 그 기도가 들어진다면 세상은 물바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물바다 위에서 죽게 될 것이다. 기도는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위급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평화신문>, 199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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