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수신부의 홈
김충수신부의 홈

left_menu


면도칼과 하느님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17:39, 조회 : 1,265, 추천 : 306

면도칼과 하느님

면도칼과 하느님


나는 벌써 십수년째 면두칼을 쓰지 않는다. 어느 폭력 영화에서  사람을 면도칼로 위협하는 장면을 보아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발소에서 면도사의 칼날이 내 얼굴에 상처를 내서도 아니다. 물론 이발소에 앉아서 면도사에게 얼굴을 맡기고 있을 때 때때로 엉뚱한 불안과 공포의 전율이 스칠 때도 없지는 않다.


옛날에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울 때 원죄에 대한 강의를 매우 원망스럽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하와에게 사과를 따먹지 말라고 금령(禁令)을 내리셨는지, 그것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금령을 내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으로 모든 죄의 유혹과 위험성을 처음부터 없이 해 놓으셨다면 좋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폭력과 무질서와 혼돈이 오지 않고, 낙원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승천하는 기쁨을 모두가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원망으로 변한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잔인한 시험을 거신 것 같다고 느꼈다. 뻔히 그 계명을 거스를 줄 아시면서 무엇 때문에 그런 시험을 걸어 놓았느냐는 것이었다.

윤리신학을 가르치시던 교수신부님의 억지(?) 해명은 이러했다.   어떤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연필 깎는 칼을 선물로 사주셨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아들이 칼을 가지고 장난하다가 손을 베었다면 그 아들은 칼을 사준 아버지를 원망할 수 있겠느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미리 다 아시는 분이 아니냐 하는 것이 어리석은 나의 두 번째의 질문이며 반항이었다.


신학교수들은 한결같이 웅변적으로 하느님의 입장을 변호하기에  바쁘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미리 다 아시지만 우리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자유의지를 말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인간을 하느님의 꼭두각시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당신과 똑같은 자유와 의지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 무슨 죄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반박과 의문과 배신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유명한 철학자 니이체도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자비하신 하느님, 공의로우신 하느님, 만사형통(萬事亨通)하신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째서 세상에 이토록 무수한 죄악이 넘쳐흐른단 말인가…? 매일같이   발생하는 살인, 폭력, 절도, 인신매매, 강간, 배신 등등이 어떻게 감히 사랑의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 초월자이며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서 자행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께서 정말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면 점점 포악해져가는 인간의 죄악들을 막으실 수도 있고  아니면 적어도 벼락을 쳐서라도 경고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지 않은가.


믿는다는 사람이고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고 모두 다 똑같이 제   욕심, 제 자존심, 제 명예, 제 체면은 다 챙긴다. 그리고 액운이나   불행이 닥칠 때면 으레 하느님을 원망한다. 말하자면 말할 수 있는 자유,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면도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얼굴을 자주 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고 차라리 안전한 전기 면도기로 수염을  깎기로 그 방법을 바꾸어버린 것뿐이다.


(<평화신문>, 1992. 2. 2)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2  벼랑 끝에 선 당나귀 운전사    김충수 신부 2009/06/22 325 1497
11  박살내고 싶은 컴퓨터    김충수 신부 2009/06/22 316 1372
 면도칼과 하느님    김충수 신부 2009/06/22 306 1265
9  멱살잡힌 신부의 괴변    김충수 신부 2009/06/22 336 1404
8  로만 칼라의 멋과 그 인생    김충수 신부 2009/06/22 320 1494
7  땡큐의 위력    김충수 신부 2009/06/22 338 1292
6  달팽이과(科) 인생    김충수 신부 2009/06/22 379 1261
5  고해실 창구에 얽힌 사연    김충수 신부 2009/06/22 350 1400
4  경매붙여진 예수님    김충수 신부 2009/06/22 369 1239
3  겨자씨가 품고 있는 천국의 열쇠    김충수 신부 2009/06/22 319 1379
2  가엾은 미소들    김충수 신부 2009/06/22 375 1247
1  김충수 신부의 수상집    김충수 신부 2009/06/21 289 1404

    목록보기 1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