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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살잡힌 신부의 괴변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15:17, 조회 : 1,404, 추천 : 336

멱살잡힌 신부의 괴변

멱살 잡힌 신부의 괴변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 주라는 말씀(마태 5, 40)  이 있다. 성인이거나 아주 바보가 아니면 아무도 이 말씀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후르시초프도 이 말씀을 두고 한 말이 있다.

“나는 예수의 다른 말씀은 다 이해해도 이 말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보통 사람들은 이 말씀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이 얼마나 위대하고 효과적인 평화의 원칙인지 경험으로 말하고 싶다. 나는 실제로 뺨도 맞아 보았고, 멱살도 잡혀 보았다. 정말이지 기분 나빴다. 신부만   아니었다면 멋지게 한방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참았다. 한마디의   반항도 복수심도 품지 않았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같이 멱살잡고, 같이 치고 받고 했다면 그 결과는 서로가  원수지간이 될 뿐 아무 이익도 없다는 생각에 끝내 참았다. 결국에는 상대방이 찾아와서 용서를 청했다. 다시 친해졌다. 물론 인간이기에 어떤 떨떠름한 감정은 남아 있지만… 여기서 나의 뺨을 치고 나의  멱살을 쥔 사람이 누구이며, 왜 그랬는가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또 말을 해서도 안되겠지만 어떻든 가장 위대한 평화의 원칙은 참는데 있다고 확신했다.

누구든지 남 앞에서 싸움의 발단과 그 경위를 말하라면 저마다   자기가 옳다는 식으로 말을 만들어 하기 때문에 아예 그 경위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同態復讐法)라는 감정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항상 마찰이 일어나고 갈등이 팽배해진다. 동태복수의 원칙은 언제나 싸움과 불행을 안겨다 줄 분이다. 힘의 대결은   결코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누가 욕을 하면 그냥 듣고, 한 대 때리면 한 대 맞고 사는 것이  가장 평화스러운 삶의 원칙이다. 잠시 억울하고 섭섭하겠지만 시간이  가면 잊게 마련이고, 언젠가 하느님께서 반드시 올바른 판단을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980.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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