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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칼라의 멋과 그 인생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14:22, 조회 : 1,493, 추천 : 320

로만 칼라의 멋과 그 인생

로만 칼라의 멋과 그 인생


요즈음은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인 듯 싶다. ‘로만 칼라’라고 하면 로마 가톨릭 신부들의 전통 의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개신교 목사님들이 더 즐겨 이 복장을 하고 다닌다. 반면 신부님들은 넥타이를 즐겨 착용하며 흔히는 허름한 잠바를 걸치고 길거리뿐 아니라 점잖은 예식에까지 과감히 등장하기도 한다.

부끄러운 추억이 하나 생각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신학교 1학년이 되면(지금으로 말하면 3학년 때이다) 삭발례라고 해서  머리를 조금 깎아내고 수단(성직자의 복장)을 착복하였다. 그때 이 복장을 하고서 얼마나 좋아하고 흥분했는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어린 마음에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고 뽐내고 싶어서 방학 때 시골  동네에까지 가지고 갔었다. 그리고 기어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주일 미사에 그 수단을 입고 참례했었다. 여기까지는 신학생으로의 전시 효과도 좋았고 꽤 우쭐거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할머니가 90도 각도로 절을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신부님, 고백성사 좀 주세요.”

그후 군대 생활 3년과 나머지 신학교 생활 3년을 마치고 드디어  그렇게도 소망하던 신부가 되었다. 소신학교(중․고등학교 과정) 생활까지 포함하면 15년만에 어린 시절부터의 절대적인 포부와 평생의  소원을 이룬 것이다. 나는 신학생 생활 15년 동안 한번도 “신부가  되지 말까?”하는 생각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퇴학 보류 처분을 몇 번 받았었는데 그때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노랗게 변색된 것 같은 매우 절박하고 처참한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아직도 몸서리쳐진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가사 중 일부를 고쳐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신부가 되리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해마다 성소주일이 되면 나는 자신 있게 어린이들에게 또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제다.”

그래서 나는 공식석상에는 물론이고, 가장 멋쟁이 옷차림을 하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로만 칼라’를 즐겨 착용한다, ‘로만 칼라’는 멋있는 색깔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순결한 이미지가   풍겨서 좋다. 까만 옷에 하얀 칼라로 목을 가리우는 이 복장은 나를 세속에서 보호하고, 나 자신이 신부라는 자아의식을 항상 새롭게   해준다.

어려서부터 아니 태중 교육에서부터 사제로 키워 주신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나는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살다가 영원한 멜키세덱의   사제직에 참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산다. 내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신부님이셨던 외삼촌이 어머니께 말씀하셨단다.

“장차 태어날 아이가 사내 녀석이면 신학교에 보내고, 여자아이면 수녀원에 보내라.”

말하자면 꼬리표 달린 운명을 시작한 셈이다. 신학생 시절의 기도는 오직 한가지였다.

“예수님! 꼭 착한 신부가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신부가 된 후의 기도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죽을 때까지 변치 말고 신부로서 잘 살게 해주십시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신부 생활을 좋아하고 ‘죽을 때까지’ 절대적인 숙명처럼 이 생활을 하겠다고 고집하는가?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고자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하늘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 고자된 사람도 있으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태 19, 12).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러므로 일차적인 목적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데 있다는 것이 틀림없다. 또한 현세적으로 여러 갑절의 상을 받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 때문에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상을 받을 것이며…” (루가 18, 19~30).

그러나 정말 행복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보람과 긍지를 갖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이지만 사제인 덕분에 사람들이 구원의   열매를 맺고 기쁨과 사랑을 되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있는 삶이다.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직책이 바로 이 영생의   길을 인도해 주는 봉사자의 직책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그렇다고 사제 생활 24시간이 마냥 즐겁고 희망에 넘치고 매순간 의욕적인 것은 아니다. 솔직히 신부들에게도 베드로 사도가 당했던 사탄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언제나 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다. 그 길을 막으려던 베드로의 심정도 이해할만하다.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펄쩍 뛰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사정없이 호되게 야단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마태 16, 23).


처음 신부가 되었을 때는 미사 드리는 것, 고백성사 주는 것, 성세, 혼인성사 주는 것 모두가 마냥 신이 나서 정성과 열을 다해 게다가 폼까지 잡아가면서 곧잘 한다. 그래서 칭찬도 받고 인기도 상승한다. 특히 총각이라는 보증 수표(?) 때문에 처녀들의 인기는 그 신부가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간에 대단한 것이다. 그러다가 십 년이 훌쩍 지나가고 40이라는 인생의 갱년이 문턱을 저만치 바라볼 때 인기도는 슬그머니 하락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통받는 사람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하나같이 죽고 못살겠다는 하소연과 푸념만 나열하기 시작한다. 미사 드리는 것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화되어서 마치 성호경이 자동 스위치나 되듯이 미사가  시작되면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까지 일사천리로 숨쉴 겨를도 없이 달려가고 마는 경우도 있다. 잘못하면 미사 드리는 로봇이 되기 꼭 알맞다.

바로 이때부터 신부 생활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성숙하고 숙련된 봉사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때부터의 사제 생활은 수확의 계절이라고나 할까…? 온갖 유혹과 장애물과 타성과 기계화된 생활과의   투쟁이 성숙도를 높여 가는 것이다. 권태와 육체적인 피로와도 싸워야 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더욱 친절하게, 병들고 소외된 모든   형제들에게 느긋한 벗이 되어 준다는 것이 별난 보람이다. 주위에서는 느닷없이 아끼던 친구, 친지들의 죽음을 알려온다. 너무나 애석하고 통분을 금할 수 없는 비극들이 점점 극성을 부리는 것 같다.

이럴 때마다 나의 로만 칼라는 어느새 조금 퇴색된 색깔이 채 뻔질나게 내 목에 감겨진다. 목에서 칼라를 떼고 쉴까 하는 순간 또    한 통의 전화가 비보를 몰고 온다. 급히 달려갔다가 오는 길에 성당 입구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또 한사람의 불청객(?)을 만나게 된다.  속으로는 짜증이 나면서도 겉으로는 웃어야만 하는 희한한 생리에  이미 익숙해 있다.

모든 일을 끝내고 잘까 생각하니 원고 청탁이 밀려 있고, 강론   원고도 시급하다.

“바쁘다, 바뻐!” 하면서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낙천적인 인생- 그 인생이 바로 로만 칼라의 인생이다.


(<경향잡지>, 198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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