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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의 위력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13:15, 조회 : 1,292, 추천 : 338

땡큐의 위력

땡큐의 위력


누구말처럼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미국 구경을 해 보았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미국의 풍토와 습관을 모르고 무작정 상륙(?)했었으니 그 무수한 실수들을 말하지 않아도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그중에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운 추억 한가지를 고백해 볼까 한다.

어느 미국 신부님과 레스토랑에 갔었다. 메뉴를 보아야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그 신부님이 주문하는 대로 나도 따라서 주문했다.   이쯤 얘기하면 독자들은 벌써 내가 무슨 신수를 저질렀는지 지레짐작을 하고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실수는 음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종업원에 대한 나의 태도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신부님은 종업원이 한번 왔다 갈 때마다 쓸데없이(?) “땡큐”(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메뉴표를 집어 주는 것에서부터 냅킨, 스푼, 포크, 음식, 기타 등등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땡큐”를 해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나 보다 하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신부님이 사사건건 “감사합니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난 그만 미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는 슬슬 따라하기 시작했지만 숙소에 들어와서 곰곰히 생각하니 굉장한 수학(修學)이었다. 미국인들의 일상 속에 깔려 있는 이 “감사하다”는 말은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를 창생한 무서운 기적의 힘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의 풍속도를 그려보면 무척 대조적이다. 어느 식당에를 가든지 종업원이 음식을 날라다 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음식을 날라다 준 종업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비상식에 가깝다.

오히려 음식을 돈내고 사는 입장에 선 손님은 어디까지나 권리가 당당하기에 때로는 반말짓거리를 하는 것도 불사한다.

“야, 왜 이렇게 늦어? 빨리 좀 가지고 와! 물수건도 좀 가지고    오고…, 고춧가루, 후추가루는 안갖다 주는 거야… 음식맛이 왜 이  모양이야… 요지(이쑤시개) 좀 가져와… 등등.”

종업원을 어지간히 부려먹고 싶어한다. 게다가 말투가 어쩌면 그렇게 모조리 시비조인지 모르겠다. 음식점에서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감사합니다”는 말은 하루에 한번 쓰기도 어렵다. 우리가 혹시 감사하다는 말을 쓴다면 그것은 누구에선가 고마운 선물을 받았을 때 뿐인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리며 한번도 아니고 수십번씩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죠…?”라고 하며 만면에 희색을 띤다.

미국인들의 일상 속에 기적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는 감사의 습관과 우리 나라의 비감사(?)의 습관은 어디가 다른 것일까. 우선 기분이 다르다. 서로 감사하는 정이 오고 갈 때 그 분위기는 명랑할 수밖에 없다. 명랑한 분위기는 밝은 사회를 건설한다. 밝고 명랑한 사회란 평화가 있다는 말이고, 평화가 있으면 안정과 번영이 있다. 반대로 감사 대신 시비와 퉁명스러운 어투가 만연한 사회는 어둡고 불안하다.   어둡고 불안한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될 수 없고 따라서 발전과 번영을 기대할 수 없다.

한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부부 사이에서 또는 부자지간, 모녀지간, 고부지간에 서로 감사하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가정이란 결코 명랑할 수가 없고 평화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아침에 아내가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놓고 세수물을 떠다 놓으며 일어나라고 재촉할 때부터 생각해 보자. 아내의 수고에 감사는 커녕 곤한 잠을 깨운다고 신경질이 슬그머니 나겠다. 밥상을 들고 들어온 아내에게 “고마워, 여보! 수고했어!” 한마디 하면 조상이 덧나는 줄아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퇴근 시간의 풍경도 만만치 않다. 사정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건  술을 한잔하고 늦게 들어오건 우선 아내가 반갑게 맞이하여 웃옷을 받아 걸며 “여보, 오늘 수고 많이 했죠?”하고 감사의 인사를 한다면  얼마나 분위기가 있겠는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기적을 이룰 만큼 위대한 말이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Ⅰ데살 5, 18)고 바오로 사도도 가르치신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여전히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감사를 하기가 쉽지만 슬픈 일이 있을 때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 섭리에 대해서 찬미와 영광을 바칠 수 있다면 그는 기쁨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가르침의 요지이다. 무리한   이야기같지만 한번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의 일상에서 “감사하다”는 말은 자주 쓰도록 해 보자. 가정 안에서, 길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직장에서… 어디에서든지 감사할 일이 없을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이고,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되어질 것이다. 지금 당장 돌아서서 감사할 일이 없을까 찾아보자. 정말 신나는 생활이 될 것이다.


(<한국일보>, 198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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