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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과(科) 인생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12:26, 조회 : 1,261, 추천 : 379

달팽이과(科) 인생

달팽이과(科) 인생


선인(善人)들이 하늘 나라의 문 앞에 모여 앉아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를 고대하며 자기들의 자리가 이미 예약되어 있다고 고함을 치며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죄인들도 용서해 주실 것 같더라.”

이 소문을 듣자 거기에 모여 있던 선인들은 말문이 막힌 듯 의아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 같다. 얼마   만일까? 누구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사뭇 노기띤 음성으로 거기 모인 모든 선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대변하고 시작한다.

“결국 우린 헛수고만 했군! 우리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기만 했더라도 그렇게 고생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요!”

일종의 궐기를 주도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선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그들은 하느님의 벌을 받아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희곡작가 장․아누일이 최후의 심판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나는 달팽이를 볼 때면 자기 혼자만의 아늑한 밀실을 갖고 있는  요령있는 놈이라고 생각해 본다. 행여 손가락 끝으로 머리 부분을  툭 건드려보면 순발력있게 ‘쏙’하고 밀실로 움츠러든다. 무척 편리하고 안전한 자기 보호 체제를 갖춘 놈이다.

우리 사회 안에도 이해와 용서와 협동이라는 공동체의 생활 윤리를 무시한 채 자기만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 제법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잘못은 용납 못하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며 구구한 변명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

자칭 그들은 선인이며 누구에게나 신세를 지거나 손해를 주지도  않는다고 장담한다. 때로는 신문에 이름 석자를 내기 위해서, 혹은 TV 화면에 잘난 얼굴 한 번 비춰 보기 위해서 수재 의연금도 내본다. 자기에게 유익이 생기면 생색을 내지만 조금이라도 손해가 올  양이면 재빨리 은폐를 잘하는 수완가(?)도 많다.

하늘 나라 문턱에서 농성을 벌이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좋은 일이란   부정적인 의미의 좋은 일이다. 즉 사람을 죽인 일도 없고, 도둑질한 일도 없고, 강간을 한 일도 없고, 남에게 큰 손해를 끼친 일도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이웃을 사랑했느냐, 얼마나 남의 의견을 존중했느냐, 얼마나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협동했느냐… 하는 것이 진짜 선인의 척도이다.

이 물음에 고개가 매양 갸우뚱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달팽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신문>, 198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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