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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가 품고 있는 천국의 열쇠
김충수 신부  (Homepage) 2009-06-22 00:09:40, 조회 : 1,378, 추천 : 319

겨자씨가 품고 있는 천국의 열쇠

겨자씨가 품고 있는 천국의 열쇠


내가 어릴 때 천국은 하늘 높은 곳 그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면서 천국의 존재가 오히려 희미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천국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한 페다고지(Pedagogy)가 아닌가 싶은 의혹도 생긴다. 천국에서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던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먹고 마시며 농담하며 유쾌하게 웃는 일   등이 있을까…? 그밖에 또 다른 많은 친구와 애인(?)들을 만나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잠길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천국은 그러한 재미가 없는 곳 같다. 즉 아무런 고통도 불행도 슬픔도 없이 끝없는 즐거움과   행복 속에서 세상에서의 고통과 슬픔의 기억도 없이 영원토록 뜬구름 속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소리만 연발하는 따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유치하고 애매한 의심들을   확연히 풀어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예수님만이 우리가 꿈꾸는 천국을 비유로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의 철없는 생각들을 바꾸어 놓으신다.

천국은 자나라는 씨와 같고, 그것도 아주 작은 겨자씨와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신다. 이 짧고 뚱딴지(?) 같은 비유는 우리의 천국에  대한 어리석지만 순수했던 동심마저 확 깨버리는 기분이 든다. 천국은 우리가 꿈꾸는 그런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국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고…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이 성장해 가고 있고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줄기가 돋아서 나무가 되는 과정 속에 담겨 있는 생명의 신비를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천국의 비밀을 완전히 알아 들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생명이 있기에 싹이 돋고 줄기와 잎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상태의 이면에는 반드시 신비의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계속적으로 자라서 완성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완성의 날이 바로 천국의 도래가 아닌가 싶다.


모든 자연의 성장 과정이 말해 주듯이 모든 것의 시작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놀라운 발전과   성장을 보게 된다. 여기에 바로 희망이 서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도 이와 같이 역사의 발전과 성장 과정 속에서 계속 열려 가고 있고, 커지고 있고, 전진하고 있으며 우리 인류 모두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이다. 그 완성의 날은 이른바 종말이며 그때는 농부가 추수할 때처럼 좋은 열매는 거두어들이고 빈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리는 추수와 심판이 따른다.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가져야 할 태도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듯이 단 한번의 큰 선행으로 행복의 전당인 천국을 따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하고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요청이며 희망 사항이다. 모든 것의 완성, 모든 선의의 노력의 결정체로 나타나는 곳이어야 한다.  행여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진탕 먹고 마시며 즐기다가 죽을 때가서나 살짝 회개해서 천국에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은 오늘의 비유 말씀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다.


시작은 작고 초라하며 무의미한 것 같지만 항상 인내와 끈기와   희망으로 선행의 씨앗을 매일매일 심어야 한다. 매우 작은 겨자씨  한알이라도 무시하고 짓밟아버려서는 안된다. 겨자씨와 같은 작은  씨앗이 마침내는 커다란 나무를 형성한다는 생명의 신비 속에서 우리는 천국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


(<서울주보>, 1985.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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