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수신부의 홈
김충수신부의 홈

left_menu


삼위일체 대축일
김충수 신부  (Homepage) 2013-06-07 17:46:52, 조회 : 534, 추천 : 145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Jn.16,12-15)-(2013.05.26)

김충수 신부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하느님은 오로지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절대적인 명제이며, 가장 중요한 신(神)의 존재양식이어야 합니다. 이 만일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라면 그 의 존재론적 위상은 이미 하위급이 되며, 더 이상 우리의 흠숭(欽崇)과 공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유일신(唯一神)관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고의 존재, 全知全能의 존재, 完全無缺의 존재는 오로지 하나이지 여럿이 될 수 없다는 것철학적인 절대 명제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세 위격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고, 그 역할과 활동의 모습도 세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창조주이시며 삼라만상의 주재(主宰)권자로 등장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으며, 신약에 와서는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또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협조자이신 보호자 성령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에는 하느님의 모습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속성을 신학자들은 삼위일체라는 말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성경에는 세분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존재양식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이라는 어찌 보면 모순적이고 괴변적인 존재 양식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모순과도 같은 하느님의 존재 양식이 놀랍게도 우리의 존재 이유이며, 우리 생명의 원동력이고, 화합과 일치의 대명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다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시고는 진흙을 빚어 사람의 모습을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唯一神의 절대적인 신봉자인 유태교에서 한 분 뿐이신 하느님복수 명사우리’라고 표현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절대적인 한분의 존재이지만, 그러나 독불장군식 유아독존으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적인 존재로 계신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을 보면 하느님께서“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는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하시면서 아담의 짝궁인 하와를 만들어 주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도 새로운 흙에서 빚은 것이 아니라 아담의 갈빗대 중에서 하나를 빼내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자식이라는 또 하나의 존재가 생겨남으로써 가정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시작에서부터 삼위일체적인 존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삼위일체적인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바로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이며, 동시에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사랑과 화합과 일치의 공동체이신 하느님께서 바로 모든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동시에 삶의 방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존재 양식대로 사는 것만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삶의 방식이며, 이른바 믿음의 생활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적 삶의 모습 안에만 진정한 사랑이 있고, 진정한 희망이 있으며, 참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받들어 모시고, 성자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며, 성령을 우리의 삶의 보호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매일같이“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의하면서 성호경을 긋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것처럼 우리 모두도 여럿이지만 서로 하나로 일치하고, 사랑하며 화합하는 가운데 서로 나누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태초에 창조주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념대로 사는 저 아름답고 위대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참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행복의 비결은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대로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 사랑과 나눔가장 아름다운 이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AMEN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001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김충수 신부 2018/06/23 43 145
1000  일곱 형제와 하나의 아내    김충수 신부 2013/06/07 139 675
999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15 518
998  예수 성심 신심 미사    김충수 신부 2013/06/07 147 555
997  복되신 마리아의 방문 축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58 543
996  바르티매오의 믿음    김충수 신부 2013/06/07 130 594
995  제배데오의 두 아들의 청원    김충수 신부 2013/06/07 148 544
994  주님의 제자가 받을 상급    김충수 신부 2013/06/07 115 503
 삼위일체 대축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45 534
992  신앙생활의 필수 원칙    김충수 신부 2013/06/07 129 497
991  주님의 두번째 수난 예고    김충수 신부 2013/06/07 135 480
990  성령 강림 대축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35 498
989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김충수 신부 2013/06/07 145 779
988  일치를 위한 기도    김충수 신부 2013/06/07 129 517
987  부활 제6주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37 520
986  너희는 내 사랑안에 머물러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32 575
985  노동자의 주보 성요셉 축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52 590
984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    김충수 신부 2013/06/07 135 489
983  부활 제5주일    김충수 신부 2013/06/07 143 539
982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김충수 신부 2013/06/07 142 513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51]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