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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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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647회 작성일 21-04-2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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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Lc.1,57-66.80)-(후곡성당)-(2018.06.24)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성서를 통해서 너무나 많이 듣던 이름이고, 당시 로마의 분봉왕으로 와있던 헤로데의 부정한 결혼생활과 잘못들을 탄핵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용감한 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 누구보다도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그 길을 닦던 사람으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과 신약의 분기점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대에 가장 훌륭한 선지자로서 각광을 받으며 요르단 강에서 ‘하느님께로 돌아가자’는 회개운동을 전개하며 세례를 베풀었던 사람으로 잘 알려졌고, 예수님께도 세례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날 때부터 이미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지르인 즉 하느님께 특별히 선별된 사람으로서 그 아버지 즈카리아가 제단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 점지를 받아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이던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무엇보다도 특별히 돋보이고 있는 이유는 한 마디로 그의 위대한 겸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군중들과 추종자들이 있는 앞에서 아무 이름도 없었던 일개의 시골 나자렛 사람인 예수가 나타나자마자 즉시 머리를 조아리면서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도 없는 몸이다”라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이것은 오늘 제2독서인 사도행전에서도 사도 바오로가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이 말 속에서 그의 인품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특히 정치인들) 자기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데 자기보다 좀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찍어 내리려고 혈안이 되기가 일쑤인데 세례자 요한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기꺼이 자기의 일등석을 그리스도께 내주며 자기는 이등석으로 내려앉았습니다.

한편 이러한 요한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 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마태.11,11) 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정직하고 의로우며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칭 지도자요, 선생이며, 박사이고, 누구보다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은 잘 하지만 자기 자신이 비판받지 않을 만큼 의롭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정직과 의로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겸손함 때문에 세기의 영웅으로 예수님께로부터 대단한 칭송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칭찬을 받을 때 제일 약해지기 쉽고 교만해지기 일쑤인데 비해서 세례자 요한은 끝까지 겸손의 덕을 잃지 않았습니다. 요한 복음 3장을 보면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Jn.3,3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직하기는 하나 용기가 없어서 혼탁한 사회의 부정이나 부조리에 항거하지 못하지만, 요한은 감히 맞설 수도 없었던 서슬이 시퍼런 권력자인 영주 헤로데에게 까지 바른 말을 함으로써 참수의 변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아는 것은 많은데 덕이 없어서 그 지식과 총명함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옛말에‘잘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인다고 했고 빈 독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자기 P.R 시대라고 해서 누구나 자기를 선전하기에 바쁘고, 자기가 최고라는 허황된 자기기만에 빠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쩌면 모든 시비와 갈등과 싸움은 바로 이 자기 우월감에 빠진 사람들의 독점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떠한 분노와 폭행에도 교만이 그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자기의 권리와 우선권을 인정받지 못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죄의 뿌리는 교만에 있다고 옛 성현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일등만 되려고 하고, 모두가 다 인정만 받으려 하지, 남을 인정해주거나 남을 먼저 배려해주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 사회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분명 잘나고, 똑똑하고, 아는 것은 많은데 거기에 謙遜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덕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웃에게 해악이 되고 시비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겸손의 모범은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항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입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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